[행복사다리 1단계 : 건강(여행)] - 구름 위에서 두 발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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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LD 작성일22-12-10 05:21 조회2,70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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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두 발로
정 영 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늘 경이롭다. 낭만과 고독을 즐기던 청년 전투기 조종사 시절에 나만의 아주 특별한 동기와 방법으로 여행을 했다. 하늘 길로 가보았던 곳을 다시 땅 길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덕분이다.
전투기의 비행은 여객기와 많이 다르다. 여객기는 승객들이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준다. 하지만 전투기는 임무를 위해 속도, 고도를 자유롭게 변경하는 기동의 자유를 부여 받았다. 독수리와 매처럼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 갈 수 있다. 영공방위 임무를 위해 우리 하늘이라면 어디든지 재빨리 날아간다. 동해 울릉도 상공에서 영공으로 진입하려는 미식별 항공기를 감시하고, 서쪽 바다 덕적도 상공에서 공중 비상대기도 한다. 종종 남쪽 끝 마라도까지 날아가 불법으로 침범한 외국 항공기를 쫓아내기도 한다. 우리나라 땅과 바다, 하늘 어디라도 천음속으로 날아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이런 과정에서 여느 사람들은 거의 가볼 수 없는 하늘 길을 가보게 된다.
하늘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더 먼 곳을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이 창공으로 오르면, 더 멀리, 더 넓게 보게 된다. 한반도 17km 상공에서는 고개를 한 번만 돌리면 동해와 서해를 볼 수 있다. 사물이나 풍경을 멀리서 보면 더 넓고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 종종 현실을 초월하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영감이 샘솟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음속의 궤적을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대기권 아래에서 연속하여 변화하는 순간 순간에 망막에 포착된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은 영혼을 치유한다.
가을에 산악 상공을 비행하다보면 색다른 단풍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연결된 백두대간의 형형색색의 단풍은 빛의 화가 모네의 팔레트 위에 풀어진 물감이다. 이렇게 하늘 위에서 어떤 풍경화 명작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다 보면, 불현듯 비행을 마친 후에 꼭 다시 걸어서 가고 싶어진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했다. 새로운 눈을 가지기 위해, 진짜 여행을 위해서 꼭 다시 가보아야 했다.
나의 여행은 대부분 그랬다. 하늘 길로 가본 곳을 땅 길을 따라 다시 가는 것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 계획은 더 없는 기대와 활력을 선사한다. 비행을 하면서 다녀 온 곳을 지도로 꼼꼼히 살펴본다. 산 정상과 계곡, 가파른 등고선에 숨어 있는 수행자의 토굴, 벼랑길 따라 산 너머로 연결된 인적 드문 청정한 해변... 구름 위에서 소리의 속도로 날아, 누구도 쉬이 볼 수 없던 그 풍광을 다른 눈으로 보기 위해 찾아 간다.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두 발로 걸어 다시 찾아가는 여행은 나만의 여행법이다.
1990년 가을 즈음. 독도에 가깝게 접근한 러시아 정찰기를 감시하기 위해 긴급 출동하였다. 울릉도 상공에서 비행을 하면서 섬 곳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동해안의 외딴섬 울릉도. 시선을 동남쪽으로 돌리니 수평선 끝머리에 독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짙푸른 동해바다는 총천연색 영롱한 울릉도를 오롯이 감싸고 있다. 맑은 가을 햇빛을 흠뻑 안은 섬은 더없이 맑고 영롱하다. 험하고 뾰족하게 보이는 성인봉을 비롯한 여러 산봉우리들이 두 손을 흔들면서 나를 부르고 있다.
여행은 떠날 수 있는 자의 행복이다. 그 해가 가기 전 12월 어느 날 어렵게 휴가를 얻어 제천에서 묵호로 가는 태백선 야간열차를 타고 험준한 백두대간을 밤새 넘었다. 그 날 오후, 운이 좋게도 험한 바다날씨로 결항이 잦은 울릉도행 여객선을 탑승했다.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면서 낮은 태양 빛은 출렁거리는 파도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한결 풀어진 마음에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 한 마리도 친구처럼 정겹다. 쾌속여객선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날쌘 선체가 고래가 숨 쉬러 물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크게 출렁거린다. 기분 좋은 울렁임이다.”
“배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다. 긴 포말 뒤로 육지를 희미하게 밀어낸다. 겨울철 동해의 높고 심한 여울에 선체는 파도를 따라 크게 출렁인다. 장엄한 엇박자의 리듬으로 심한 피칭과 롤링은 승객들을 힘들게 한다. 속이 뒤틀리는 흔들림에도 자유롭고 신비로운 섬 여행에 대한 기대는 가득하다. 육지에서 멀어져 가기 때문일까? 어딘가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는 첫 경험이다. 바다는 파랗다 못해 검푸르다. 하늘 길에서 만났던 울릉도를 배를 타고 다시 들어간다. 구름 위로 갔던 길을 두 발로 걸으러 간다. 도동에서 저동으로 걸어보고, 저동에서 천부리로 차를 타자. 드센 겨울바람 맞으며 관광선으로 섬 둘레도 유람하고, 나리분지 거쳐 말잔등과 성인봉도 오르자. 성인봉 정상에서 독도도 가슴에 담고 오자.”
또 몇 해가 지난 어느 여름. 제주도 백록담 상공을 날았다. 제주도의 멋진 비경을 배경으로 F-4E 편대비행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를 돌고 또 돌았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 상공으로, 우도에서 차귀도로 탐라의 온 하늘을 누빈다. 중산간의 원시림이 코앞에서 숨을 쉰다. 한라산 남쪽 서귀포 상공을 지나면 누런 하귤 생각에 입에 단침이 고인다. 송악산을 지나면 철지난 가파도 청보리가 눈에 선하다. 모슬포항 하늘 위에서 때 이르게 방어가 입맛을 돋운다.”
그 후로 매년 제주의 동, 서, 남, 북 곳곳을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했다. 우도, 차귀도, 서귀포, 모슬포, 애월, 마라도, 가파도, 한라산 등등... 하늘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제주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을 얻는다. 한라산은 제주도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 한라산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변화하는 산 모양은 산신령이 되어 편협한 나를 꾸짖는다. 두발로 찾은 여행을 통해 장소를 바꾼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게 된다.
하늘 위 구름 사이로 다녀온 여행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다. 땅위에서의 여행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하늘에서 맹렬한 속도로 비행하며 마주친 장소를 두발로 걸어 가보면, 보이는 영역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 지 깨닫게 된다. 하늘 여행이 자랑스러운 헌신의 부산물이었다면, 두발로 다시 찾은 여행은 내 자유의지에 대한 확인이다. 두발로 자유를 얻는 순간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비행기 위에서 보는 하늘과 땅은 늘 경이롭다. 언제든 하늘 위에서 본 장소는 다시 걸어서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내게 하늘 여행이 1부라면 지상 여행은 속편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온전한 여행을 통해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 눈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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