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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사다리 1단계 : 건강(여행)] - 구름 위에서 두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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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LD 작성일21-12-16 09:53 조회2,0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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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서 두 발로

 

   낭만과 고독을 즐기던 20대 후반 전투조종사 시절, 나만의 아주 특별한 동기와 방법으로 여행을 했다. 하늘 길로 먼저 가보았던 장소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남았던 곳을 정해 다시 땅 길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직업이 전투기를 타고 우리나라 방방곳곳을 날아다니는 조종사였던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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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기는 일정한 경로를 따라서 비행을 하는 여객기와는 다르게 하늘을 자유스럽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와 매처럼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 갈 수 있다. 우리나라 영공을 방위하는 임무를 위해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보면, 동해 울릉도 상공에서 영공을 침범한 다른 나라 항공기들을 감시하기도 하고, 서쪽 바다 덕적도 상공에서 만일 사태에 대비해 공중 비상대기도 한다. 간혹 우리나라 남쪽 끝 마라도까지 날아가 불법으로 침범한 외국 항공기를 몰아내기도 한다. 그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 땅과 바다, 하늘 어디라도 임무가 주어지면 빠른 속도로 날아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이렇게 비행을 하는 과정에서 여느 사람들은 가볼 수 없는 여러 장소를 가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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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면 평소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높은 산보다 더 높은 하늘로 비상하게 되니,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게 된다. 사물이나 풍경을 멀리서 보면 더 넓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때로는 현실을 초월하는 느낌을 받거나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음속의 비행기보다 더 빠르게 시시각각 움직이면서 변한다. 그 변화하는 찰나의 순간, 망막에 포착된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은 지친 영혼을 치유한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에 산악 상공을 비행하다보면 지상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단풍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높은 산봉우리들이 연결된 백두대간에 형형색색의 단풍이 능선과 계곡을 따라 빛의 화가 모네의 파렛트 위의 물감 같은 느낌으로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이렇게 하늘 위에서 어떤 풍경화 명작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다 보면, 불현듯 비행을 마친 후에 꼭 다시 걸어서 가고 싶어진다.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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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20대 여행은 항상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늘 길로 가본 곳에, 비행을 마친 후에 시간을 내어 땅 길을 따라 다시 가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더 없이 자유롭고 더 없는 호사였다. 비행을 마친 후에 다녀 온 곳을 다시 지도로 꼼꼼히 살펴본 후,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두 발로 걸어서 다시 찾아가는 여행은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해볼 수 없는 나만의 독특한 여행법이었다.


   1990년 가을 즈음. 독도에 가깝게 접근하여 비행하고 있는 러시아 정찰기를 감시하는 임무로 긴급하게 출동하였다. 울릉도 상공에서 오랫동안 대기 비행을 하면서 섬 곳곳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동해안의 외딴섬 울릉도. 시선을 동남쪽으로 돌리니 수평선 끝머리에 독도가 아스라히 보였다. 짙푸른 동해바다는 총천연색 영롱한 울릉도를 오롯이 감싸고 있었다. 맑은 가을 햇빛을 흠뻑 안은 울릉도는 더없이 맑고 영롱하다. 하늘에서 보더라도 험하고 뾰족하게 보이는 성인봉을 비롯한 여러 산봉우리들이 두 손을 들어 흔들며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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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가기 전 12, 초겨울 어느 날 오후. 한 전투기조종사가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의 따스한 햇볕이 드는 우측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어렵사리 휴가를 얻어 제천에서 묵호로 가는 태백선 야간열차를 타고 험준한 백두대간을 밤새 넘어온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궂은 바다날씨로 인해 결항이 잦은 울릉도행 여객선을 탑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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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쌉쌀했던 20대 후반의 여행기억을 더듬으며, 하늘에서 보았던 장소를 두 발로 걸어갔던 여행을 기록한 수첩을 찾아서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20대 마지막 여행은 떠날 수 있는 자의 행복이다. 배가 항구를 벗어나면서 정오의 태양은 출렁거리는 파도에 반사되어 눈을 더 부시게 한다. 한결 풀어진 마음에 배를 따라오는 갈매기 한 마리도 친구처럼 정겹다. 쾌속여객선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날쌘 선체가 고래가 숨 쉬러 물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크게 출렁거린다. 기분 좋은 울렁임이다.

배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간다. 육지를 뒤로 뒤로 희미하게 밀어내며 간다. 겨울철 동해의 높고 심한 여울에 맥없이 따라 오르내리는 선체는 크게 롤링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승객들을 더 힘들게 한다. 심한 배의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신비로운 섬 여행에 대한 기대로 행복감이 가득하다. 육지에서 멀어져 가기 때문일까? 무엇인가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는 첫 경험. 바다는 파랗다 못해 검푸르다.

하늘 길로 만났던 울릉도를 배를 타고 다시 들어간다. 구름 위로 갔던 길을 두 발로 걸으러 간다. 도동에서 저동으로 걸어보고, 저동에서 도동으로 차를 타자. 유람선으로 울릉도를 한 바퀴 돌고, 나리분지 거쳐 말잔등과 성인봉도 오르자. 성인봉 정상에서 독도도 가슴에 담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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